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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에 선 ‘검찰 포토라인’

피의자 인권 중요하지만 긍정적 기능 외면해선 안돼



정주영 사진7.jpg

부상당한 정주영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3년 1월 15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다가 취재경쟁을 벌이던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지는 불상사를 당했다. 이 사고로 포토라인이 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사진 한국일보 제공).



포토라인 선포식 사진4.jpg

포토라인 선포식

2006년 8월 3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토라인 준칙 선포식'에서 한국사진기자협회 최종욱 회장,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현 한국영상기자협회) 곽재우 회장,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윤원석 회장(왼쪽부터)이 포토라인 협정문에 서명, 교환한 후 악수하고 있다(사진 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검찰 포토라인이 그야말로 ‘포토라인’에 섰다. 포토라인은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나며 △사실상 여론재판으로 유죄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언론계는 인격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국민의 알 권리 보장 △검찰 수사 감시를 통한 투명성 제고 △피의자 인권 보호 △공평한 취재 기회 부여 등 긍정적 기능을 들어 포토라인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포토라인은 언론 스스로 만든 장치

 포토라인은 기자들이 스스로 만든 취재 제한선이다. 1993년 ‘초원복집 도청 사건’으로 서울지검에 출두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몰려들며 정 전 회장이 이마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한국TV카메라기자회(현 한국영상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회(현 한국사진기자협회)가 논의 끝에 이듬해 포토라인을 제정, 도입했다.


 언론 환경 변화에 따라 두 협회는 한국인터넷기자협회와 함께 기존 포토라인 운영안을 보완해 2006년 ‘취재현장에서의 포토라인 시행 준칙’을 선포했다. 


 MBC 나준영 뉴스콘텐츠 취재1부장은 “예전에는 취재원이 검찰이나 경찰에 소환되거나 사회적인 대형 이슈가 있는 현장에 취재 제한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포토라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반민주적 인사, 권력형 비리 인사들이 소환되는 과정에서 언론인들이 취재원의 인권도 보호하고 해당 기관의 다른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지말자는 취지로 최소한의 취재 제한선을 만들어 지켜온 것”이라고 밝혔다.

포토라인이 문제? 피의사실 공표와 포토라인은 ‘별개’
 ‘포토라인이 문제’라는 시각에 대해 기자들은 “피의사실 공표, 공개소환과 포토라인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서강 한국일보 멀티미디어부 차장은 4월 발행한 <사진기자>에서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면서 포토라인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및 공개소환 관행과 포토라인을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공개한 소환 정보를 토대로 취재진은 포토라인을 설치해 취재 질서를 유지할 뿐”이며“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없애야 할 것은 포토라인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위법적인 피의사실 공표와 자의적 판단에 의해 출석 일시 등을 공개하는 잘못된 수사 관행”이라는 것이다.

25년 동안 별 말 없더니, 이제 와서 왜?

 기자들은 포토라인을 운영한 지 25년이 됐는데, 그동안 별 얘기가 없던 인사들이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홍대 누드 몰카’ 사건의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웠을 때 많은 비판이 있었는데도 별 반응이 없던 법원 인사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전후로 존폐 논란까지 확대시킨 데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포토라인 폐지를 주장했던 법조계가 포승줄에 묶인 정준영 씨를 포토라인에 세운 데 대해서는 잠잠한 데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나준영 부장은 “피의자 인권 문제가 힘 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면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 같은 사람이 포토라인에 서면 망신을 주고 인권을 침해하는 거라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법무부의 포토라인 논의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포토라인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의 인권이 침해받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가 먼저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의자 인권이냐 국민 알권리냐

 법조계에서는 포토라인의 순기능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일반 국민들은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법관의 심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공인’의 경우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공인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공인의 인격권은 일반인보다 더 침해되어도 괜찮다는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소환된 다음날인 1월 12일 개인 블로그에 “국민의 알 권리를 구실로 유죄 심증을 퍼뜨려 무죄 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라며 포토라인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언론계에서는 포토라인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정치권력, 재벌과의 유착으로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하거나, 검찰 수뇌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하는 등 검찰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검찰이 권력형 비리 사건 피의자를 비밀리에 소환해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들은 포토라인이 검찰의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를 감시하고 수사의 투명성을 높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과도한 취재 경쟁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언론인 스스로 제한선을 만들어 지키면서 피의자와 취재진의 신체를 보호해 온 만큼, 포토라인을 폐지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기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정도 되는 사람이 곧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언론들은 그 집 앞에서 일명 ‘뻗치기’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피의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피의자 인격권 보호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조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포토라인에 서는 사람이 취재진으로 인해 심리적 압박을 받지 않도록 기자들끼리 협의를 통해 취재 인원을 정하고, 미리 질문을 보내 답변을 준비해 올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며 “피의자를 따라가며 무리하게 질의하거나 촬영하는 것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검찰은 선출직 공직자, 고위 공직자 등 ‘공인’이 아닌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서는 안 된다”며 “언론도 피의자를 공격적으로 다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회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포토라인과 피의사실 공표 관행에 대해 오는 7월부터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6월까지 공청회를 열어 법조계ㆍ언론 계ㆍ학계ㆍ시민사회단체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법무부가 문무일 검찰총장의 말대로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인격권 사이에서 조화로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안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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