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취재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숙제
‘너무 식상하지 않냐? 다 정리된 일을...’
5월 18일 방송될 SBS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5.18 실종자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는 사실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5월 18일에 5.18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나는
주위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접하며 ‘이미 완료된 역사적 사실을 단지 시기적으로 겹친다는 이유 때문에 관성적으로 제작하는 것인가?’ 하는 혼돈을 일으켰던 것 같다.
어쨌든 프로그램 제작은 시작되었고 취재진은 11일 간 광주에 머물며 5.18유족회와 5.18묘역, 광주시청, 너릿재, 황룡강 등의 여러 학살 현장을 돌았고 유족들을 만났으며, 한편으론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당시 계엄군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취재 과정을 겪으며 느낀 점은,
5.18문제는 제대로 해결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5.18문제 가운데 취재진이 집중했던 부분은 실종자 시신 발굴 문제였는데 이 부분을 파헤치다 보니 결국 5.18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들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실종자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는 광주항쟁 당시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의 제보를 필요로 하는데 문제는 정확한 제보를 해 오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당시 피해 지역에 아직도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지금도 5.18 문제를 꺼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 취재진을 회피하거나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당시 계엄군은 아직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고 정확한 암매장 위치를 증언해 준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익명으로 제보를 해 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제보 내용이 ‘조선대 뒷산에 암매장 했다.’는 식이어서, 넓디넓은 조선대 뒷산을 다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실상 시신 발굴이 불가능한 수준의 제보였다.
또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암매장 추정지로 예상되는 지역은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신 발굴 업무를 맡고 있는 광주시청은 암매장 장소라고 제보된 51곳 가운데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5곳을 발굴해봤지만 단 한 구의 시신도 추가 발굴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재팀은 제보 장소 가운데 몇 군데를 실제로 발굴해 보았지만 발굴과정에서 막막함만 느꼈을 뿐이었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시 계엄군의 명단을 확보해서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암매장지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는 것인데 계엄군의 명단은 군 당국에서 신변보호라는 명분하에 대외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
실종자 문제는 이 같은 폐쇄형국에서 일보의 진전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꼴이었고,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행여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다며 마른 눈물을 흘리고 있다.
5.18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한 실정이지만 김영삼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해결된 것이라곤 5.18의 역사적 의미를 일정 정도 격상시켜놓은 것과 공식적인 묘역을 만들어 놓은 것, 피해자 보상 문제에 손을 대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젠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진상도 공식적으로 규명된 바가 없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 진 바가 없다.
당시 계엄군을 지휘했던 지휘관을 찾아가 봤지만 만날 수도 없었고 전화기를 통해 들은 얘기라곤 ‘ 잘 모른다. 사실상 지휘권이 없었다. 자료를 가진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 18일에도 5.18에 대한 정부 차원의 행사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광주의 아픔을 해결하는 내용은 전무했다.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주문제는 어느덧 관습적인 연중행사로 변질되어 가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5.18을 지나간 과거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광주에서 만난 피해 당사자들에게 5.18은 치유되지 않은 현재의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육체적인 상흔으로, 어떤 이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로 25년 넘게 생생한 통증을 지속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실종자 문제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진행했기에 5.18책임자에 대한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종자 문제는 결국 책임자 문제 및 정부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겨우 한 달의 시간으로 제작한 1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5.18 피해자와 유족들의 문제에 도움이 되기에는 대단히 미흡하겠지만 광주문제가 이미 ‘완결되어 버린 역사’라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꾸어지길 희망한다.
SBS 뉴스추적팀 이원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