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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록, 내란을 막아 내다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 비상계엄 포고령이 공표되던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날 포털 뉴스 댓글 창은 다 막힌 데다 네이버 카페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도 먹통이었다. 계엄을 실감했다. 인터넷도 끊길 수 있다는 생각에 텔레비전을 켰다. 일부 방송사들은 태연히 정규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보도 통제가 이미 시작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마치 80년 광주처럼.
  하지만 이내 안도했다. 계엄기획자의 작전 시계가 1980년도에 멈춰있는 것이지, 2024년의 미디어 환경은 그때와 달랐다. 계엄군이 설령 방송사들을 점령한다 해도 개인 미디어와 유튜브 라이브와 같은 실시간 소통 채널 통제를 어찌 감당하랴. 
  완전무장한 계엄군의 국회 난입 실시간 방송은 911 쌍둥이 빌딩 테러 중계만큼이나 충격이었지만, 시민들을 행동으로 이끌었다. 이날 생중계로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다. 국회 앞 도로에서 검정 롱패딩을 입은 한 청년이 장갑차를 가로막고 서 있던 모습, 그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달려와 함께 맞섰던 모습, 심지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져 계엄군 차량의 국회 진입을 막던 시민들의 모습, 계엄군들이 버스에서 하차하려 하자 시민들이 다독이며 다시 버스로 안으로 돌아가게 한 후 다 함께 스크럼을 짜고 버스를 에워쌌던 모습을.
  진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당시 병력 규모를 보면 ‘중과부적이었다’는 김용현의 말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거짓말인지 알 수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계엄에 동원된 경찰은 4,200명, 군병력은 1,700명에 달했다. 그중 국회 주변에만 경찰 1,900여 명, 계엄군 906명이 투입됐다. 최소 2,700명의 병력이 국회에 한꺼번에 몰려든, 입법부를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무장 상태는 더 충격적이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은 소총과 권총, 저격총 등 187정의 무기를 휴대했고, 최소 9천 발 넘는 실탄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방송보도로 밝혀졌다. 긴급했던 상황 뒤에 혹시라도 끔찍한 학살이 계획되었던 건 아닌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각인된 1980년 5월 광주의 계엄군 모습과 2024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모습은 너무 비슷했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오자 계엄군이 당황해 주춤했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군이 시민을 물리적으로 해치지 않은 점은 천만다행이다. 목숨을 걸고 싸운 5월 광주의 용감했던 시민들은 그 상황을 외부에 알릴 방법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던 반면, 2024년 12월 국회에 모인 시민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무기 삼아 계엄군의 일거수일투족과 현장의 진실을 기록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시민사회와 즉시 공유해 국회를 지킬 수 있었다. 5월 광주는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게 해준 용기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와 기록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내란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린 영상기자와 오디오맨들의 용기와 헌신
 
  그날의 현장을 용기 있게 기록한 언론인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 기자들은 계엄군을 촬영 대상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이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고 설득하려 했다. 당시 취재 활동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국회 CCTV 영상이 이를 증명한다. 계엄군 십여 명이 국회 정현관 진입에 실패하자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난입을 시도했을 때였다.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이 이들을 뒤쫓아가 촬영하기 시작하는데, 한 계엄군이 오디오맨이 들고 있던 사다리를 위협적으로 강탈해가는 장면과 또 다른 계엄군이 이 오디오맨을 막아서며 방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누군가 계엄군들에게 뛰어가 국회 진입을 막으려 하자 영상기자들과 계엄군 사이에 몸이 부딪치는 충돌도 발생한다. 포고령이 공표된 위험한 상황임에도 영상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은 채 촬영을 이어갔고, 오디오맨들은 끝까지 영상기자들의 곁을 지켰다. 
  이들의 용기와 헌신은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김석우 법무부 차관은 12월 17일 국회 법사위 현안 질의에서, 내란 당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이 담긴 TV 생중계 영상과 언론보도에 대해 그 자체로서 현장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터에 직접 가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그 참상을 세세히 말하는데 정통한 사람은 진실해질 가능성을 비웃도록 단련된,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들”이라고 지적하며 방관과 무감각한 태도를 지적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비상계엄 내란 사태는 스펙터클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일상의 일부이자 전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기록할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비상계엄 이후 TV방송사들은 뉴스 속보와 긴급취재 형식의 기획을 통해 내란의 진실을 신속하게 심층 보도하고 있다. 매일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과 진실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지상파 방송을 많이 시청하고 있다. 뉴스 때문에 홈쇼핑 매출도, 넷플릭스 시청도 줄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이 방통위, 방심위 반칙 운영을 통해 망가뜨리려 했던 방송계가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다. 




최선영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5면_최선영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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