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자 여러분, 새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고 지켜온 공적방송과 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일반시민으로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기록까지 해야하니 영상기자 여러분들의 심경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일반시민들이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증거를 넘겨주는 영상기자 여러분의 노고와 분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MBC의 DNA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너지는 것은 참 순식간이었습니다. 겨우 0.7% 차이로 갈린 2022년 대통령 선거 후 2년만에 KBS가, YTN이, TBS가 이렇게 무너져내리고, 마지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MBC도 바람 앞의 촛불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허약한 것일까요? 여러 차례 되풀이된 언론노조의 파업이나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왜 윤석열 정권의 광기어린 인사정책 앞에 맥을 못 추는 걸까요? 촛불로 잡은 정권을 5년만에 내주고나니 더 힘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길게 보고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합니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박근혜 탄핵 직후의 MBC를 한 번 돌이켜보지요. 김재철-김장겸 등의 체제하에서 민주화 이후 20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던 MBC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 활동 열심히 했던 언론종사자들은 다 밀려나고 ‘시용기자’다, ‘경력기자’다 하는 무리가 들어와 MBC의 DNA 자체가 완전히 뒤바뀐 거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MBC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MBC가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에서 영향력, 신뢰도, 열독률 등 3개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것이지요. KBS, YTN, TBS가 무너지고 나니 MBC의 존재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권에서는 사활적 이해를 걸고 방송장악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도저히 깜냥이 안되는 이진숙을 방송위원장으로 내세워 방문진 이사진을 불법 개편한 것은 속이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MBC 영광과 상처
모든 언론사들이 저마다 영욕의 역사를 갖고 있겠지만. 공영방송의 마지막 보루가 된 MBC도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상처와 영광을 함께해왔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고, 아직 영상기자들의 활약이 시작되기 이전인 라디오 시대였지만, 부산MBC는 1960년 3ㆍ15 부정선거에 대한 마산시민의 규탄시위를 생중계하여 4월혁명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MBC와 같은 계열이었던 부산일보는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그 사진을 전국에 전파하여 4월혁명을 불러왔습니다.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박정희는 언론이 가진 무한한 힘에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껴 사주 김지태에게 부정축재자란 누명을 씌워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와 부산 서면 일대의 토지 10만평을 강탈해 5ㆍ16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MBC는 그야말로 박정희 것이 되어버렸지요. 박정희가 죽고난 뒤 MBC의 처리 문제가 심각한 현안이 되었습니다. 언론통폐합을 꿈꾸던 전두환 정권은 MBC도 KBS에 통합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박정희 유가족의 처우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1971년 MBC 증자를 기준으로 그 이전 5ㆍ16장학회가 갖고 있던 지분(증자 이후 30%)을 박정희 유가족 몫으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따서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증자분 70%를 뺏어 이리저리 돌다가 민주화 이후 결국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의 지배주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MBC가 소유구조는 공영적이면서 실제 운영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 ‘공영적 민영방송’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방식를 갖게된 것은 엄청나게 요동쳤던 한국현대사의 산물입니다.
언론 암흑기를 거쳐 방송민주화를...
198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였습니다. MBC만 하더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성난 시민들이 사옥에 불을 질렀지요. 6월항쟁 당시의 거리에서 MBC 취재차량이 돌을 맞고, 기자들은 발길질을 당했지요.
꼭 외부의 발길질 때문이었겠습니까. 언론인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 땡전뉴스나 보도지침이 견딜 수 있는 일이었겠습니까? 언론종사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또 직능별로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프로가 정상화되고 MBC에서는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토론>, <2580> 같은 프로그램이, KBS에서는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다큐멘터리 극장>,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했지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의 선배 여럿이 감옥 구경도 하고, 뉴스룸이나 스튜디오를 떠나 창고정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했었지요.
그렇지만 1987년 양김씨의 분열에 의한 패배와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진영이 반토막 나버린 참사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데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이루어낸 방송민주화와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육현장의 민주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싸움이 지겹도록 계속 되는 것은 여러분이 일하고 있고 지키고 있는 현장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으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김광동이나 차기환, 뉴라이트 핵심이었던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최홍재 등이 방문진 이사라는 직함을 얻었지요. 빨간색 안경의 공안검사 고영주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자리를 더럽히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권이 어거지로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진숙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을 만나 MBC 민영화를 몰래 논의하다 녹음이 되어 크게 말썽을 일으켰던 자이지요.
어디 이진숙 뿐인가요? 지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영상기자 여러분들은 선배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언론환경도 바뀌고 기술도 바뀌고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의 욕심 많은 방송장악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새롭게, 더 유쾌하게, 더 발랄한 여러분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속 우리의 눈과 기억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열림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