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 취재후기 Ⅰ>
새로운 취재방식과 정보 교류에 대한 고민 필요
2006년 12월 17일 09시.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들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다.
우리는 차문을 열고 장비를 챙겨 공항 VIP출구로 향한다. 현재 기온 영하 10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20도 이상인 상황. 촬영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앞으로의 취재가 쉽지 않을 것임을 몸으로 느낀다. 크리스토퍼 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장소는 폭 5m 내외의 좁은 공간. 이미 전날 자전거 자물쇠로 사다리를 묶어놓은 외신들 덕에 앞자리는 사다리 행렬로 기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두 번째 라인에 트라이포드를 펼칠 수 있었다. 힐은 오후 13경 일본비행기로 도착한다고 하니, 우리는 4시간동안 바들바들 떨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일찍 도착해 두 번째 라인이라도 확보한 것이 다행이다.
힐이 도착하기 2시간 전. 속속 외신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도착한다. 자물쇠를 채워 놓은 사다리 덕에 느긋한 그들과, 반면 늦게 도착해서 3번째 라인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다른 취재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십 명의 취재진들의 주시하는 눈동자, 떠들어대는 입모양을 통해 드디어 ‘6자회담’ 취재를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4시간 동안의 뻗치기 끝에 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힐이 도착하자 시끄럽던 취재현장은 일순간 그의 멘트를 따기 위해 조용해진다. 싱크를 따는 팀 외에는 부지런히 스케치를 하기 위해 최대한 각도가 되는 곳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스케치 전쟁이 치러진다. 힐이 모습을 보였던 시간은 불과 5분 내외. 4시간의 뻗치기에서 얻어내는 것은 3분 내외의 싱크와 대여섯 컷의 영상. 우리 팀의 첫 번째 취재는 이렇게 끝났다.
‘6자 회담’의 대부분의 취재는 뻗치기로 시작해 뻗치기로 끝난다. 일주일 동안의 동선은 힐이 머무는 숙소 ‘국제 구락부’와 ‘북한 대사관’ 그리고 회담장소인 ‘조어대’가 전부였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뻗치기 후 각국 대표들의 싱크를 따는 것이었다. 아침 싱크를 따기 위해 대표들이 출발하기 전에 그들의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전날 늦게 끝난 일정에도 불구하고 0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떠지지 않는 눈에 물을 뿌려 물리적으로 의식을 깨게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06시 30분. 호텔 한 켠에 설치된 포토라인 앞줄에는 이미 24시간 대기하는 외신 트라이포드로 여유 공간이 없다. 그나마 우리가 확보 할 수 있는 곳은 두 번째 열. 두 번째 열에서는 첫 번째 열 트라이포드 위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가 카메라를 어깨에 맨 채 기다려야 했다.
힐의 회담장 출발 시간은 미정. 마냥 뻗치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나마 이곳 국제 구락부는 상황이 나았다. 호텔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춥지 않았고, 수많은 취재진 들 덕에 한국에서 혼자 뻗치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뻘쭘하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에는 외부인들의 눈치를 의식해서 기자로서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려 했으나 힐이 출발하기 10분전에 알려준다는 보좌진들의 설명을 들은 이 후에는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들 소풍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했다. 울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바닥에 주저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운 좋게 소파를 차지한 사람은 잠을 청하기도 한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외신 기자들과 이것저것 물으면서 친해져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명함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듯 ‘힐의 숙소에서의 취재’는 새벽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나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수 십대의 카메라 틈에서 힐 싱크를 딸 때 느끼는 극도의 육체적 피곤함을 제외하고는 부담이 덜한 편이었다.
‘6자회담’은 힘든 출장이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각국의 수석대표들에게서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싱크를 확보해야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팀들은 미국, 대한민국, 북한 이 세 나라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하루라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새벽에 일이 시작되고(물론 순번을 돌려 취재를 맡게 함으로 누적된 피로를 상쇄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늦은 시간에 아침 리포트까지 처리해야 됐기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한 정식 회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베이징 출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베이징 시내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작년 이맘때 수의대에서 무한대 뻗쳤던 황우석 사건 취재와 빗대어 비교할 정도였으니,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지루하고 ‘무한으로 증폭된 찰나의 긴장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외신들과 비교했을 때 취재 인력의 상대적 부족함에서도 힘듦의 원인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가장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NHK는 80여명의 취재진들이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한다. NTV역시 8팀 이상을 현지에서 봤고, 중국 CCTV 취재진들도 곳곳에서 24시간대기 트라이포드를 뻗쳐놓은 상태였다. 각사에서 1~2팀 정도를 보내는 우리나라 방송국들과 비교했을 때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수적으로 앞선 그들과 경쟁을 벌여 뉴스 게더링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이 지치기 때문에 당연히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그 틈을 누군가 헤집어 놓는다면 아수라장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미묘한 긴장상태에서도 타사와의 ‘풀’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고, 매 취재 순간 각자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어깨를 더 누르는 듯 했다.
내 카메라기자 경력 3년 반, 해외출장은 수습 이후 단 한번, 위성송출 처음, 부끄럽지만 베이징 출장 전 나의 현 주소였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국내 취재에서는 여유부리기도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던 나였다.
이번 출장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취재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줬다. 선배들 오디오맨 역할로 따라다니면서 일을 했던 해외 출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첫날 수 십대의 ENG를 접했을 때 당황했고, 수많은 외신들 틈에 끼어 공유되지 못했던 우리의 정보력에 좌절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취재동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해외 출장임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질 기회는 없었지만, ‘6자회담’과 같은 취재에서 얻을 수 있는 상황 대처 능력과 사람들과의 대면 능력, 일정 취재의 핵심인 위성송출까지 일주일 만에 해외 수습 트레이딩 하듯 한 번에 많은 경험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에 특별히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6자 회담과 같이 국가적인 중대사이면서 제한된 공간에서의 취재에 어려움이 예견되고, 특히 해외 취재 인력에 비해 물리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한 미래 영상 송출의 대세가 될 수 있는 웹 전송에 대한 카메라기자들의 철저한 준비와 다양한 정보 교류의 필요성 또한 절감했다.
배문산 /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