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 취재기>
"사람이 떠내려갔어요. 살려주세요"
지난달 16일, 제 11호 태풍 나리가 제주로 향하고 있었다. 해마다 겪어온 태풍이라 큰 긴장감은 없었다. 예상보다 일찍 태풍 나리가 제주에 상륙한다는 소식에 일요일이었지만 좀 일찍 출근했다. 그때가 오전 7시쯤, 여느 휴일처럼 조용하던 보도국에 전화벨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다급한 목소리의 시민들의 제보전화였다.
“집이 물에 잠겼는데 119는 불통이다.”
“태풍이 소형급이라하던데 여긴 물난리가 났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대부분의 애월읍 중산간의 유수암과 한림리 일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급히 ENG 카메라와 소형 카메라까지 챙겨 보도국을 나섰다. 바깥 날씨는 확인한 순간 당황스러움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빗줄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어졌고, 강풍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고 있었다. ‘이 정도 비면 어떤 그림을 찍어도 그림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급히 차에 올라타고 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평화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량으로 이동한지 5분. 차량 와이퍼를 쉴새 없이 움직였지만 앞은 분간할 수 없었고, 하천에서 불어난 물이 범람해 차량 절반이 물에 잠겼고 도로는 돌 굴러가는 소리에 귀를 어지럽혔다.
더 이상 운전은 어렵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밖은 말 그대로 생지옥! 물에 잠긴 차량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울고 있는 사람들, 지하로 들어오는 물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절규, 귀를 찢을 듯한 바람과 폭우는 쉴새없이 몰아쳤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다’
차에서 내린지 5분여 첫 촬영을 시작했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은 더욱더 처절했다. 생존과 생계를 위해 태풍 ‘나리’와 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뷰파인더를 통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물에 잠긴 집에서 빠져 나온 할머니 한분이 촬영하는 나를 붙잡고 도와달라며 피맺힌 절규를 쏟아냈다. 좋은 그림을 잡겠다던 내 생각은 태풍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목숨을 걸고 태풍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선 나도 목숨을 걸어야한다‘
허리까지 물에 잠기고, 급류가 계속되는 현장에서 생생한 그림들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현장을 한시간여 촬영하고, 급히 이동했다. 복개한 하천 하류 쪽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한천 하류인 용담동 일대는 수중 도시로 변해 있었다. 자동차들이 급류에 떠내려가고, 하천 주택 집들은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 갔어요.!!!”
갑작스런 물난리에 주민들은 넋을 잃고 있었다. 주변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한천은 흙탕물을 토해내며 엄청난 위력으로 주변 주택과 차량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주택가 골목은 배수수로 변해 있었고, 화물차까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여러 차례 태풍을 경험했지만, 태풍 나리의 위력은 놀랍고 무서웠다. 촬영을 계속하던 중 다른 취재팀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동문재래시장을 촬영하던 중 급류에 시장이 잠기면서 취재기자가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은 계속 불어나고, 취재기자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일단 촬영을 포기하고, 구조를 하겠다며 전화가 끊겼다. 조바심을 내며 현장 촬영을 하던 중 다시 연락이 왔다. 촬영스탭과 함께 취재기자를 구조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중이란다.
‘휴~’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됐고, 뷰파인더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이는 피해 현장을 쉴새없이 촬영하며 회사로 복귀했다. 오후 4시쯤 제주가 태풍의 영향권에 벗어나면서 빗줄기가 약해져 다시 피해 현장으로 내달렸다. 제주시내 도심은 말그대로 폐허였다. 주택가 마다 급류에 휩쓸려 차량들이 한데 뒤엉켜 쌓여 있었다. 여기가 거의 매일 다니던 곳인가 싶을 만큼 엄청난 피해를 입은 곳도 한둘이 아니었다. 피해 주민들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강명철 / JIBS 제주민방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