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건강>
지금 당신이 쓴 글이 건강한 노후의 지표다
글을 잘 쓰게 된다면 좋은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우선 회사에 제출할 보고서나 기획안을 쓰는 일로 끙끙 앓아가며 며칠 낮밤을 꼬박 보내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자기 분야에 관한 독창적인 책을 출판하고 인기 있는 강연자가 될 수도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멋진 작품을 내고 시인이나 소설가로 등단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좋은 글을 꾸준히 쓰면 노년의 복병이라 불리는 치매를 예방하고 건강한 여생을 보낼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 쓴 글은 건강한 노후의 지표’라는 다소 과장된 듯한 주장은 ‘노화와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수녀 연구’라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과학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다. 1986년에 과학자 데이비드 스노든(David Snowdon)이 이끄는 연구팀은 수녀 600명 가운데 선별한 25명의 자서전을 분석하고, 사망 후 뇌를 부검하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데이비드 스노든 지음, 유은실 옮김. 2001. <우아한 노년> 사이언스북스. 참고). 기억력과 사고력, 그리고 행동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통설은 85세 이상 사람들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은 이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고 다른 사람은 이 병을 피해갈까? 스노든의 연구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생활조건이 거의 동일한 평균 나이 80세의 수도원 수녀들을 연구 대상으로 정했다.
연구팀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녀들이 20대 초반에 썼던 자서전을 분석했다. 개념 밀도(여러 개의 단어로 표현된 개별적인 생각)와 문법적 복잡성을 중심으로 자서전의 모든 문장들을 조사해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으로 나눴다. 하위 집단에 속한 수녀들이 쓴 글은 ‘나는 어떤 직업보다도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 좋다.’와 같이 비교적 단순한 문장이었다. 상위 집단은 그보다 더 복합적인 사고와 감정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아직 3주를 더 기다려야 하지만, 지금 나는 청빈과 순결과 순종이라는 성스러운 맹세를 통해 주님에게 속박되어 내 신랑의 뒤를 따르길 기다리면서 도브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상위 집단에 속한 수녀들은 자신의 문장에 더 많은 개념을 집어넣으면서도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어 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자서전과 사망 후 기증된 뇌의 부검 결과를 비교했더니, 이 가운데 10명이 알츠하이머병의 소견을 보였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소견을 보인 10명 중 9명이 자서전 분석에서 개념 밀도가 낮은 하위 집단에 속해 있었다. 단순한 문장을 썼던 수녀들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90%였다는 얘기다. 개념 밀도가 높고 문법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구사했던 수녀들은 뇌에서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조사 결과는 20대에 썼던 자서전의 문장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58년 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학계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2009년에 흥미로운 사실이 또 발견되었다. 다른 대학의 연구팀이 추가로 기증된 수녀들의 뇌를 부검해보니 사고와 기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수녀들도 절반 가까이 알츠하이머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병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무증상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는데도 기억력 상실과 같은 인지적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특이한 것은 무증상 알츠하이머병 수녀들의 해마 신경세포가 알츠하이머병 징후가 전혀 없는 뇌의 신경세포에 비해서 최대 세 배까지 컸다는 점이다. 이 현상에 대해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에 침범 당한 세포를 스스로 치료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해마 신경세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개념 밀도가 높은 문장으로 좀 더 복합적인 사고를 하며 자신의 글에 섬세한 정서까지 담아냈던 수녀들의 뇌는 알츠하이머병의 공격에 맞서 자신을 훌륭하게 방어했다는 얘기이다.
특별한 치매 징후 없이 건강하게 평생을 보낸 수녀들의 글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개념 밀도가 높고 문법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구사했지만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형용사와 부사를 적절하게 사용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재미있게 표현한 대목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수녀 연구’에서 본 것처럼 젊은 시절에 쓴 글로 노후의 정신 건강을 예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쓴 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또 그것으로 예견되는 미래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최근에 쓴 글을 꺼내보자. 글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마음먹고 한번 써보자. 문체는 어떠한가? 문장 구조는 복잡한가 아니면 단순한가. 글의 내용은 흥미를 돋우는가 아니면 단조로운가. 또 긍정적인 정서가 넘치는 글인가 아니면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가.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더 해보자. 개념 밀도가 높은 문장으로 섬세한 감정을 재미있고 긍정적으로 표현한 글을 매일 쓴다면, 우리는 알츠하이머병 같은 자기 삶의 모든 기억을 송두리째 잃고 마는 무서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대답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글쓰기와 같은 강한 지적 자극을 꾸준히 연마한다면 치매의 인지적 증상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일기부터 시작해 보자.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문장으로, 감정 표현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재미있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글을 써보자. 욕심을 내서 매일매일.
조영권 전북대 강의 전담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