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와 일본 쇼와천황의 기념사진이 일본을 지배했다.
천황보다 우월한 맥아더....일본 국민들의 충격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천황....전쟁에 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게한 심리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직후인 1945년 9월 27일 오전 10시경, 히로히토(裕仁) 쇼와 천황(昭和天皇)은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사령부를 방문했다.
사령부 현관에 천황을 마중 나온 사람은 맥아더가 아닌 두 명의 미군 부관이었다. 천황은 극도로 긴장된 표정이었다. 패전이 된지 불과 한 달이 조금 지난 시기였다. 그래서 전쟁 당시 일본 육해군 대원수였던 천황은 연합국 측으로부터 전쟁범죄자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앞으로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무조건 항복한 일본 전체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천황이 맥아더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오전 10시 5분이 지나서 리셉션실에 마중 나온 맥아더는 회담을 위해 천황을 리셉션실 방 안쪽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시 두 사람이 만난 사진 3장이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맥아더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이 사진은 미군인 제타노 훼레이스가 찍은 사진이다. 그는 천황과 맥아더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3번의 셔터를 눌렀다.
첫 번째 사진
두 번째 사진
세 번째 사진
첫 번째는 후래쉬 때문일까 맥아더가 눈을 감은 자세.
두 번째는 천황이 입을 열고 다리를 벌린 자세. 이 사진은 일본 국민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일본 궁내청은 미국 측과 교섭을 통해 원본 필름을 영구폐기 처분하기로 합의하고 소각 처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세상에 한 번 나온 사진은 아직도 소장되고 있다.
세 번째는 천황이 예복을 입고 부동자세로 초췌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비해 맥아더는 여유 있게 허리에 손을 얹고 노넥타이의 군복차림으로 당당히 서있는 모습을 취했다. 또 맥아더와 나란히 서 있는 천황은 키가 작고 왜소한 모습이었다. 당시, 키가 165센치인 천황은 일본인의 평균 신장이었으나 키가 180센치인 맥아더는 미국인의 평균적인 신장이었다. 훼레이스는 겨우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이 일본 언론에 공개되면서 일본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점령군 총사령관인 맥아더가 천황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인 사이토 모키치(斉藤茂吉)는 당시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고 “매일 밤에 수면 약을 먹어도 참을 수 없다”며 “맥아더 놈”이라고 일기에 적을 정도로 심리적 쇼크가 컸다.
맥아더가 허리에 느긋이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승자의 여유가 충분히 느껴지는 자세였는데 비해 천황은 아무리 봐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당시 천황과 동행한 통역자는 “예복 차림으로 정장한 천황의 표정은 초라하고 매우 힘든 얼굴 이었다”고 한다. 또 맥아더 통역관이었던 포비온 바워스(Faubion Bowers) 소령은 일본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당시 “천황은 떨리는 손으로 맥아더의 악수를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회고에서 알 수 있듯이 맥아더가 천황과 만나 찍은 세 번째 사진은 일본 언론에 공개된 역사적 장면의 사진으로서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 천황은 다른 사람과 나란히 찍히지 않은 사진만 공개되었고 일본 국민들에게 ‘살아있는 신’과 같은 신성한 존재였다. 사진 촬영은 궁내성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천왕의 권위를 실추시키거나 ‘살아 있는 신’은 웃지 않는다고 하여 웃는 모습의 촬영은 금지 되었다. 천황이 가만히 있는 모습과 차렷 자세만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은 천황을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담아내어야 했다. 하지만, 연합군이 촬영한 세 번째 사진이 공개 되면서 천황은 국민들로부터 신적인 추앙심을 잃어버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닌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본 내무성은 왕실의 경외감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이 사진이 불경(不敬)에 해당한다고 하여 각 언론사에 사진 발표를 금지했다. 하지만, 천황이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일본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연합군최고사령부는 1945년 9월29일 오전 11시 30분에 신문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조치의 지침을 공포하고 일본 언론에게 사진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 사진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했다고 하는 사실을 일본 국민에게 깨닫게 해 준 사진이었다. 그리고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닌 인간이고 일본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국민에게 심리적으로 충격을 준 한 장의 사진이었다. 또 맥아더는 이 사진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승자의 이미지를 패자에게 각인시키고 전쟁 전과 같이 일본이 다시는 천황을 신격화하여 침략전쟁의 도구로 이용되지 않도록 용의주도하게 심리전을 전개한 것이다. 맥아더 사령부는 이듬해 1946년 1월 1일에 천황으로 하여금 ‘인간선언’을 하도록 만들었다. 충격적인 천황 사진 공개는 ‘인간선언’의 사전 작업이었다.
사진출처 맥아더기념관
한원상 / Y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