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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실감. 뭉텅뭉텅 사라지기 시작한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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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트 위에 선 A씨가 손을 들어 강을 향해 가리켰습니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반쯤 쓰러진 전봇대와 수평선 위로 듬성듬성 솟은 집들이 있었습니다. A씨가 가족과 함께 터를 잡고 살았던 집은 지금 물속에 잠겨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깔라바기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사이클론으로 물에 잠겼던 마을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육지와 길이 끊어진 채 옅은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기후 위기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는지. 특히 폭우와 해수면 상승의 피해는 서서히 시가 물에 잠기는 방식이 아니라 한번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물이 빠지지 않는 방식으로 뭉텅뭉텅 삶의 터전과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차라리 집이 물에 잠겨 내륙 지역으로 이주를 마친 A씨네 가족과 이웃들은 안전한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이 물에 잠겨 이주하게 된 A씨의 가족이 살던 곳 바로 옆에는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강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수상가옥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하는 매우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집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리면 물에 잠길 것처럼 입구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보트에서 내려 수상가옥 촌에 발을 디딘 순간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년 혹은 올해 있을 폭우에 무사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열흘간 만난 사람들의 터전을 찾아가면 항상 그들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살았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마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평온하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육지가 사라진 풍경의 충격과 함께 주민들이 다 같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발이 푹푹 빠져 신발도 신을 수 없는 곳에서 맨발로 고운 진흙땅을 밟으며 진흙으로 다시 무너진 길을 다 같이 복구하고 있던 모습. 우리도 주민과 발맞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진흙을 밟으며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미끄러질 때마다 발가락에 힘을 주어 진흙을 잘 잡아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취재진을 부축해 주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주민들의 환대와 도움으로 취재를 잘 마치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글라데시에서는 또 한 번의 큰 홍수가 났고 인명피해 또한 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났던 주민들과 마을은 무사할지 마음이 쓰입니다.


  얼마 전 동기가 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기는 낳을 수 없겠다고 말하며 기후 위기를 아이에게 경험시키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기후 위기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모습을 보고 온 지금 동기가 저에게 던진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더 이상 경고가 아니라 시작된 재난으로서 우리의 터전과 생명을 빼앗고 있는 이 기후 위기로부터 우리의 삶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카메라를 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MBC 전인제 기자 전인제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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