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피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피를 잊은 사람들
12월 3일 밤 두 시간 반의 계엄 국회를 다시 떠올려 본다. 국회를 떠나와서도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들이 있다. 경찰이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갈등을 최대한 잠재우며 통제하던 모습. 군인이 국회 본관 앞에서 내 카메라 렌즈를 움켜쥐던 모습과 함께 촬영하지 말라고 요청하던 모습. 그리고 처음 국회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수십 명의 시민이 두 시간 만에 수천 명의 시민으로 변화하여 국회대로를 가득 채우고 계엄 해제와 대통령 퇴진을 외치던 함성.
이 모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듣고 읽어서 기억하는 80년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2024년 계엄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질문이 생겨나게 했다. 과연 80년 계엄이었다면 내가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군인들이 국회 본관 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을까? 천 명의 시민들이 깊은 밤 국회대로 앞에 두 시간 만에 운집할 수 있었을까? 질문하다 보면 항상 아니라는 답을 내리게 됐다. 1980년의 계엄과 2024년의 계엄은 확실히 달랐고 분명히 우리는 과거에서 많이 나아왔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과거 계엄 시기의 피를 기억하는 우리들은 다시 한번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스스로가 피 흘리고 쓰러지고 희생되지 않아야 하므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날 국회에 있었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시민들까지 모두 충돌이 격해지는 것을 조심했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썼다. 이미 역사 속에서 계엄은 우리 사회에 큰 흉터를 남겼고 이 흉터를 기억하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과거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2시간 37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됨으로써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간절함은 증명됐다.
이 변화를 만들어 낸 중심에는 과거의 흉터를 기억하는 우리의 간절함과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소셜미디어와 스마트 폰이 계엄 국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이 모습 전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 언론인과 시민들의 카메라가 전파를 타고 흩어져 있는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닿았다. 평소 디지털 매체의 발전이 기성 언론에게는 위기라는 말을 들으며 일 해왔지만, 이번 계엄의 상황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위기이기보다 기회였다. 계엄 소식을 빠르게 공유하고 다 함께 극복하기 위한 기회로서 기능했다. 과거 계엄군의 통제로 계엄의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던 시기와는 전혀 달랐다. 실시간으로 전달된 국회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들고 군이 투입되는 모습, 군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안 복도에 담을 쌓는 모습, 시민들이 하나둘 국회 정문 앞으로 모여들던 모습. 이 모습들은 우리가 서로 힘을 모을 수 있게 만들었고, 지금은 당시의 영상이 내란죄 피의자들의 진술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자료로도 쓰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변화했다는 사실을 서서히 체감하는 며칠 동안 변하지 않은 것 또한 알게 되었다. 12월 3일 계엄 이후 시민들은 다시 한번 선포될지도 모르는 계엄을 두려워하며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왔다. 계엄이 해제된 이후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는 대통령을 두려워하며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상정되는 날까지 4일간 시민들은 두려움에 국회 앞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본회의가 열리기 전 대통령은 첫 번째 담화를 발표했고 “임기와 정국 안정 방향을 당에 일임하겠다.” 말했고 시민들은 더욱 불안한 눈으로 국회를 지켜봐야만 했다. 여당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탄핵 표결에 대한 입장을 뒤집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민들의 불안함을 비웃는 듯 여당 국회의원들은 전원 퇴장이라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배신했고,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폐기되었다. 집단으로 퇴장해 당내의 소수의견까지 억압하는 폭력적인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과거 계엄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어떻게 계엄에 대한 두려움과 평화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간절함을 못 본 척할 수 있었던 걸까? 본회의장을 우르르 떠나는 의원들을 보며 그들이 과거의 계엄에서 우리가 흘린 피를 잊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했다.
군과 경찰, 시민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연락이 닿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흘러가는 말이긴 했지만, 사내에서 집회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 말을 듣고 힘이 세고 큰 것들이 그러하듯이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작고 사소한 것에는 무감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이 단지 국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숨어있고 어떤 순간에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회에서 응원봉과 독특한 깃발들이 등장하며 과거와 달라진 활기찬 집회의 모습을 취재하는 동안 이 행렬에 참여하는 것조차 통제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추운 거리에서 서로 핫팩과 단 것을 나누어 가지고 눈을 마주 보며 공감하는 순간에 함께 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그와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 여전히 우리에겐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를 대리해 투표권을 행사해야 했을 의원들이 우리를 대표하지도, 대리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었지만, 우리를 무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우리를 절대 과잉 대표하지 않도록 카메라를 들어야겠다. 며칠 전 국회대로에서 인터뷰 한 어머니가 지하철의 무정차와 버스의 우회에도 유아차를 끌고 나와 아이와 둘이 차가운 거리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정말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좌절 속에서도 일어나 서로를 지키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 증거로서 남을 수 있도록 현장을 기록해야겠다.
MBC 전인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