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진짜’ 저널리즘, KBS 파업뉴스
파업이라는 해방 공간 그리고 파업뉴스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늘 어깨에 짊어지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무실을 뛰쳐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공영방송 KBS의 촬영기자들은 목이 말라있었다. 9월 말 현재 「KBS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제작거부와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한 달이 다되어간다.
이번 파업은 KBS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여인원과 열기로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지난 10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이 망쳐놓은 일터를 되찾고자 하는 KBS 구성원들의 열망과 언론적폐 고대영 사장 체제로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는 분노가 굳건히 이번 파업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파업이 다름 아닌 ‘해방 공간’임을 실감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파업뉴스’라는 것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파업 중에 웬 뉴스를 제작하고 있을까. 그간 권력에 줄을 대고 눈치보기로 일관했던 보도국 수뇌부들이 보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뉴스들을 파업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독립적으로 제작해 보도하고 있다. 전파가 아닌 유투브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말이다.
보도국장단이 막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 단독보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기 며칠 전, 오랜 친구이자 같은 회사 선배이기도 한 이재석 기자가 연락을 해왔다. ‘중요한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파업뉴스로 제작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내용인 즉슨, 지난 정권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총괄계획과장으로 일하며 직접 댓글공작에 가담했던 사람이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 인터뷰를 한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인 김기현 씨는 단장이 없을 때에는 직무대행을 하는 사실상의 부단장 역할까지 맡았던 핵심적인 인물이다. 김 씨는 카메라 앞에서 밤샘 댓글 공작을 해 여론을 조작한 결과를 매일아침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에 직접 보고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담담하게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따로 수령해왔으며 지난 정권의 조사가 의도적으로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가 한 증언들은 하나같이 톱뉴스 감이었다. 그런데 이런 특종보도를 왜 파업뉴스를 통해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을까.
애초에 지난 8월 초부터 보도국장단에게 이를 방송하고 특별취재팀을 꾸려 추가취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보도국장단은 폭로자의 고발 내용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물적 증거’를 가져오라며 핑계를 댔다. 이미 군으로부터 눈밖에 나있던 내부고발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일급 보안문서를 소지하고 있을 리 만무할 뿐더러, 수사권도 없는 기자에게 이러한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김 전 과장 스스로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조속한 수사로 자신의 진술이 맞는지 검증하기를 원하는 점 등으로 볼 때 보도할 가치가 차고도 넘치는 사안이었다. 그의 증언이 바로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KBS 파업뉴스를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된 뒤 많은 매체가 이를 인용보도 했고, 특히 SBS는 톱뉴스로 이틀 동안 보도를 이어갔다. 이 보도를 통해 관련자들의 검찰 조사가 다시 시작되었고, 국방부는 지난 정권에서의 조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재조사 TF」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정규뉴스가 아닌 파업뉴스가 진짜 저널리즘으로 인정받는 공영방송 KBS의 아이러니한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금 파업을 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파업뉴스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
파업뉴스 팀 기자들이 둥지를 튼 KBS연구동 기자협회 사무실은 파업이 시작된 후 늘 북적거린다. 파업뉴스 팀은 지난 단독보도 이후로 6편의 파업뉴스를 제작해서 보도했다. 거의 일주일에 두 편 정도를 제작한 셈이다.
‘KBS 민주당 도청사건’이나 ‘언론인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정리한 굵직한 내용부터 ‘박영환 광주총국장의 막후 인사공작’같은 조합원들의 투쟁심에 불을 지피는 보도까지 내용도 범위도 다양했다. 사무실에서 몸만 가지고 나온 우리 촬영기자들은 모든 장비들을 개인적으로 수급해야 했다. 회사 소유의 장비들은 하나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촬영용 캠코더와 편집용 PC는 외부 업체로부터 대여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DSLR이나 노트북 등도 총동원됐다.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 그리고 자막 수퍼부터 인트로 타이틀 제작까지 모든 작업의 A부터 Z를 촬영기자들이 손수 작업해 완성했다. 그야말로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몇 번의 제작을 거치고 나니 본의 아니게 1인 제작 시스템을 경험하고 공부하는 기회까지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내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는 가끔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히 데스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팀원들 모두가 서로 상의하고 도와가면서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제작자율성’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리고 결과물 역시 아주 훌륭하다.
그야말로 작은 ‘해방 공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러한 작은 해방을 계속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서 이 파업을 우리들의 승리로 끝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이 일하던 그 현장으로 돌아가 진정한 해방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파업뉴스’라는 작은 경험이 우리 팀원 모두에게 나아가 KBS 촬영기자 모두에게 어둠을 걷어내는 작은 촛불하나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최진영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