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올림픽 출장
- 파리올림픽 취재기
낯선 도시에 첫발을 내딛다.
모든 것은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파리올림픽 취재 확정."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영상 기자로서 수많은 현장을 경험했지만, 올림픽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그것도 파리에서. 나는 이 출장이 단순한 취재를 넘어선 개인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한편엔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그 낯선 도시가 나를 어떻게 맞이할지,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순간, 어깨에는 무거운 카메라 장비가 걸려 있었고, 마음에는 묵직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올림픽’. 어릴 적 TV 속에서만 보던 거대한 무대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질 차례였다. 그런데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카메라 뒤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가슴을 뛰게 했다. 이 낯선 도시는 나에게 어떤 도전과 이야기를 안겨줄지 궁금했고, 동시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딘 상태였으니까.
불타오르는 경쟁의 현장, 파리의 중심에서
올림픽 경기장이 나를 압도했다. 각국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경외감을 넘어 경탄 그 자체였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관중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선수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매 순간을 포착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내게 예상치 못한 도전을 던졌다. 파리의 여름은 생각보다 더 무자비했다. 쏟아지는 햇빛은 내 피부를 태우는 듯했고, 경기장에서 몇 시간씩 촬영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지쳐갔다.
하루는 근대5종 경기를 촬영하던 중, 태양이 너무 강렬해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모든 것이 흐려지는 듯한 순간, 나는 결국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그늘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이 중요한 장면을 놓치면 안 돼!"라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 선수들의 순간을 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남은 마지막 힘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마치 선수들이 금메달을 향해 달리듯, 나도 한순간 한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전력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시. 다른 날들과는 달리, 프랑스 샤토루로 가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자 사격 경기를 촬영하기 위해 어둠을 뚫고 이른 시간부터 출발했다. 해도 뜨기 전의 프랑스는 적막했지만, 내 마음속은 잔뜩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사격 경기는 내가 특히 기대하고 있는 경기 중 하나였다. 사격 25m 권총 결선에 출전하는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는 예상 못 했지만, 그녀의 모든 순간을 잘 기록하고 싶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은 점점 더 긴장감에 휩싸였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관중들의 숨소리가 멈추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 또한 선수들과 함께 그 긴장감을 느꼈다. 양지인 선수의 얼굴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드러났고, 나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담기 위해 렌즈를 조준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양지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그녀의 환한 웃음이 그대로 담겼다. 내가 목격한 순간은 단순한 승리 이상의 감동이었다. 한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그 순간,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감동을 함께 느꼈다.
메달의 반대편에서
올림픽은 승리의 무대만이 아니다. 경기장을 나서며, 나는 여러 선수의 좌절을 마주했다. 메달을 놓친 이들의 눈물은 예기치 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는 패배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오랜 시간 견뎌온 노력과 고통이 서려 있었고, 경기장의 패배는 그들의 삶 속에서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한 선수의 패배 후 믹스드존 인터뷰를 촬영하던 날이 있었다. 그는 패배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지켜봤다. 렌즈를 통해 느껴지는 그의 감정은 너무나도 진실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승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견뎌온 시간과 과정 역시 올림픽의 일부라는 것을.
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선수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눈물을 기록할 때, 나 역시 그들의 아픔과 좌절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배의 순간에도 그들만의 드라마가 존재했다. 나는 스포츠가 단순한 승리와 패배를 넘어선 인간의 감정과 꿈이 얽힌 거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승리의 기쁨 뒤에 숨겨진 패배의 아픔은 올림픽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떠나는 파리, 가슴 속에 남은 울림
출장 마지막 날, 나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동안의 여정을 떠올렸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처럼 나도 이제는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경기장 앞을 지나며 잠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은 이제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선수들과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한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환한 미소, 예상 밖의 승리에 감격해 나도 모르게 질렀던 환호성, 그리고 메달을 놓치고 흘린 눈물,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내던 내 카메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곳에서 내가 담아낸 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각자의 싸움을 마주한 인간들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그 깨달음들은 나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앞으로 나의 여정에 깊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경기장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열정과 감동이 남긴 울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떠나지만, 파리에서의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를 맞이할 또 다른 현장에서도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고,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MBC 한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