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처음’, ‘최초’, ‘새로운’ 그리고 ‘친환경’
- 파리올림픽 취재기
센 강에서 열리는 야외 개막식.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성비가 동일한 최초의 올림픽. 파리올림픽은 새로운 올림픽이 될 것임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된 센 강 수질 논란과 함께 한여름에 ‘노 에어컨’, 테러 위협 등 우려도 컸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인명 사고 없이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역대 최소 출전 선수에도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이란 기분 좋은 성과를 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경기장이다. 내부가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그랑팔레(Grand Palais)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이곳은 전시회나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인다. 여기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렸고 우리나라가 각 종목에서 금메달을 2개나 따냈다. 특히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장할 때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유리 지붕이 특징인 이곳에서 혈투를 벌이는 선수들을 로우 앵글로 비춘 샷은 일품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에 만들어진 야외 경기장에서는 근대 5종 경기가 열렸다. 이곳에서 아시아 여자 최초로 우리나라 성승민 선수가 값진 메달을 따냈다. 특히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한 승마 경기는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현장에서 취재할 땐 차양막이 전혀 없어서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야 했지만, 멋진 중계 화면을 보면서 그냥 참아야겠단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경기장이 아닌 곳을 경기장으로 쓰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디어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입구에서 취재 포인트까지 동선이 긴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의 경기장에는 비계 구조물(일명 아시바)이 설치돼 임시 관중석으로 쓰였는데 사람이 걸어 다니면 카메라가 쉽게 흔들려 주의해야 했다.
▲ 펜싱, 태권도 경기장이었던 그랑팔레 앞
그동안 새로 지은 올림픽 경기장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평창올림픽 경기장이 바로 그 예다. 뾰족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운영비만 들고 있다. 파리올림픽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자 건물을 최대한 덜 짓는 것을 목표로 했다. 새로 만든 경기장은 단 두 개다. 경기장에 쓰인 모든 건축 자재 역시 저탄소 자재가 사용됐다.
IBC(국제방송센터) 건물도 친환경적이었다. 외관부터 오로지 기능에만 충실하게 지어졌다.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미디어 키트도 없었다. 기자실도 마찬가지다. 경기장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원 콘센트와 TV 등 필수품만 있었다. 생수병은 제공되지 않았고 과일과 뜨거운 커피, 텀블러를 사용해야 하는 급수대가 마련돼 있었다. 쓰레기통도 전부 종이로 만들어졌다.
문제도 있었다. 몇몇 선수단은 선수촌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육식은 채식에 비해 탄소를 많이 발생시킨다. 저탄소 올림픽을 위해 식단에서 고기를 줄인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외부로 나가 육류를 보충했다.
선수들이 이동할 때 타는 버스에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버스가 길을 잘못 찾기라도 하면 선수들은 찜통 버스 안에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했다. 나 역시도 폐회식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시간이 폐회식 취재보다 몇 배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으로 돌아와 출장기를 쓰는 지금 한 달 넘게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시차 적응보다 날씨 적응이 힘들다. 파리는 적어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에어컨 사용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앞으로는 폭염으로 하계올림픽이 전 세계 도시 다수에서 열리기 힘들 거란 전망마저 나온다. 지구촌 축제가 지속되기 위해서 친환경 올림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SBS 윤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