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잡았다!”, “꿀맛!”.
‘생존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모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자막이다. 문명의 손길이 덜 미친 촬영지에서 출연자들이 자급자족하고 지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제법 재미를 주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저렇게 생물을 사냥하고 요리해서 먹는 게 저 나라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결국, 사달이 났다. 태국에서 천연기념물인 대왕조개를 사냥하고 시식하는 걸 방송에 내보냈다가 출연자와 제작진이 태국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석연찮은 해명과정에서 결국 사냥 장면을 촬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조공문까지 보내고도 사냥과 촬영을 한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과문은 이랬다.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중략)... 대왕조개 채취 및 촬영과 관련, 현지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후략)>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그 현장의 수중 촬영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속에서의 촬영을 배우기 전에 스쿠버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수중 수렵과 채취는 거의 모든 교육단체에서 금기시한다. 국내에서 그런 행위가 수산자원관리법 위반인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역시 금지되거나 허가가 필요한 일인 걸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속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11년 전 이맘쯤 처음 바다에 눈을 떴다. 일을 위해 하게 된 만큼, 얼마 안 지나 수중촬영도 시작하게 됐다. 기고, 걷고, 뛸 수 있어야, 심지어 뒤로도 뛸 수 있어야 땅 위에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듯, 물속에서도 뛰는 수준 이상으로 몸을 편하게 가누고 움직일 수 있어야 수중촬영이 가능하다. 그저 움직이는 것을 넘어,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즉, (중성) 부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상승과 하강으로 인한 압력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부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과 바다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프리다이빙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인위적 호흡 장치와 부력조절 장치, 추진 장치를 가지고 한정된 시간만큼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바다에 우리는 ‘명백히 언제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어류, 갑각류들, 산호들, 해초들, 심지어 돌멩이 하나도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었다.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던 존재들끼리 마주치면 문제가 생겨난다. 자라는 데만 족히 30년은 걸린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산호에 마치 공룡 발자국 화석처럼 보이는 몰지각한 인간의 오리발 자국이 남겨지는 걸 보았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니 겁을 먹고 방어하는 사나운 물고기에 물려 피를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겁 없이 손을 뻗어 작은 복어를 만져보려다 복어가 몸을 숨긴 독 품은 산호와 히드라에 쏘여 수십 분 동안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부끄럽지만 이건 제 얘기입니다).
바닷속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청객이 된다. 질서로 가득 차있는 곳이기 때문에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함부로 손을 대거나 잡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바닷속 첫 번째 규율이다. 기억과 카메라의 메모리에 담아오기만 할 뿐, 그곳을 휘젓고 부수지 않으려고 잘 움직이고 잘 머물러 있으며 가만히 멈춰 서서 지켜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생물 교과서에서 우리보다 열등한 생물이라고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주인인 바다의 생물들을 얕보지 않고, 무엇보다 건드리거나 부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거친 파도와 조류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바다가 품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 밖과 달리 다이빙 중 멈춰서 가만히 있는 것은 더 힘들다. 바닷속을 느끼고 싶고 담아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이 가만히 멈춰서서 생각해 봤으면 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한 가지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 속에서 말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겠지만 물에 들어갔을 때 바로 이 한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구본원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