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 독도를 다녀와서 -
독도로 가는 길은 예상외로 험했다. 동해의 묵호항이나 경북 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들른 다음 거기서 다시 세 시간 뱃길이다. 기상도 종잡을 수 없는데다 일반 항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접안 시설은 조금만 파도가 쳐도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게다가 육중한 방송장비들이 있어 배편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한 해에 접안 할 수 있는 날이 수십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 길고 험한 길을, 가야만하고 갈 수 있는 길을 하늘의 별을 보고 가는 심정으로 내디뎠다. 첫 번째 항해는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는 해경의 도움을 빌어 겨우 독도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3년 전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다고 해서 떠들썩했던 때에 이미 먼저 와봤던 선배들이 있었지만 TV를 통해 봐야만 했던 그 동단의 정토를 딛고 서있는 심정은 가슴 뜨거운 흥분이나 애국심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착잡함이었다. 무엇이 수 천 년 동안 인간의 욕망을 흘겨보며 바다 위로 나있었던 이 두 개의 돌섬의 단잠을 깨워야만 했을까.
이 험한 곳에도 사람의 발길은 미친다. 시절이 하수상한지라 이곳에 굳이 휴가를 오겠다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 역사 선생님들, 공무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정주부들도 국토의 최동단을 눈과 발로 확인하고는 카메라에 담으며 감격의 심정을 누린다. 일반인들이 닿을 수 있는 독도는 두 개의 섬 중 동도의 선착장 주변에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바닥이 전부이다. 그곳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와 자유로이 비행하는 바닷새들을 둘러볼 수 있을 뿐이다. 경비대가 통제하는 수 백 개의 계단을 힘들여 올라가면 그 곳에는 독도 경비대의 막사와 등대와 통신시설들이 서있다. 고관대작들이야 헬기를 통해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무거운 방송 장비들을 들고 올라와 그 정상에 서면 새들의 분비물로 가득한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우리는 그 곳에 생중계를 위해 장비를 설치하고 이곳이 대한민국의 땅임을 굳이 더 확인시켜주려 앵글을 잡아야 한다. 몇 개월 동안 뭍과의 인연을 멀리해야 하는 경비병의 애로와 긍지도 담아야 한다. 언뜻 문명과는 멀어 보이는 이곳에서 휴대전화가 터지고 TV의 영상이 전달되는 것도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은 그 곳에서 천 개에 가까울 계단을 오르내리며 영상을 찍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슬아슬하게 방송을 마쳤고 때로 우리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룬 채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 멋진 경관들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렇지만 두 번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공통의 심정을 나누었다. 밤바람이 차가운 중에도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생각만큼 힘든 일은 아니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만 아니라면 며칠 더 그 곳에서 노숙하더라도 충분히 그 광경을 눈과 머릿속에 담아두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닥이 들여다보일 듯 한 옥 빛 맑은 물을 주위에 끼고 있는 그 섬은 철제의 탑들, 소총으로 무장한 젊은 병사들의 굳은 표정과는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전부터 대를 이어 그 섬을 보금자리로 삼았을 바닷새들의 힘찬 날개 짓이나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몸을 흔드는 이름 모를 풀들이 이 외로운 섬의 오랜 벗일 것이다. 그 동안에도 총리며 장관이며 정치인들이 이곳을 들러 그 연분을 과시하고자 했겠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태평양을 그리워하며 서있는 푸른 돌섬은 그렇게 변함없이 의연히 서있을 것이다.
양두원 / SBS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