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한국 최초 우주인을 취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긴박한 러시아어 몇 마디가 흘러나오자 잠시 후 로켓은 그 몸체를 둘러 싸고 있던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불을 뿜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땅을 울리는 듯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불꽃이 흘러나오자마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를 태운 소유즈 호는 바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우주선이 발사되는 현장의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로 돌려야 했다. 발사 순간의 리액션을 취재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덕분에 로켓이 발사되는 잠깐의 순간과 이미 하늘로 올라가버린 후의 작아진 로켓의 모습만 내 뇌리에 남게 되었다.
로켓이 발사된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는 일반적인 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군사기지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도착하는 공항부터가 마치 포로수용소의 감시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었지만 외부인에게는 도착할 때부터 떠날 때까지 통제만을 강요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발사현장이 있는 기지 안으로 들어갈 때는 물론이고 시내에서 이동을 할 때에도 단체로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게다가 당국의 허가를 받은 안내자가 없이는 버스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현지 당국자들은 취재를 위해 전혀 융통성을 발휘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이뤄져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리가 자율적으로 취재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동 시에 어쩌다 버스의 정원이 초과되면 인원이 맞춰질 때까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러시아어 이외에는 영어도 사용하지 않는 지역이라 통역이 없이는 아주 간단한 의사전달조차 힘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절반정도가 리모델링을 한 상태라 깔끔하기는 했지만 욕실에서 나오는 물로는 양치도 할 수 없어서 생수로 대신할 만큼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여러모로 열악한 취재조건이었지만 카자흐스탄의 사막이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과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 발사 현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 이번 출장은 의미가 있었다. 사방이 막힌 한국과는 달리 바이코누르의 발사기지 주변은 어디를 봐도 시원한 지평선이 보였다. 그 지평선 아래에 간간히 작은 풀들과 군사시설 같은 건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넓은 발사기지의 저 편에서 한국인을 태운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르기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취재하는 우리 취재진이 있었다. 로켓이 발사되기 전 로켓 조립동에서 나와 발사대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취재하는 동안에는 바로 코앞에서 로켓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웅장한 로켓이 기차에 실려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드디어 발사준비가 완료되고 많은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주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은, 비록 사람들의 리액션을 취재하느라 모든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주선이 무사히 발사되고 방송도 별 탈 없이 나갔다. 발사하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수차례 교양프로와 뉴스를 통해 방송했지만 가장 중요한 실제 발사과정 방송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간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뉴스 취재팀 뿐 만 아니라 중계팀, 교양, 라디오 제작팀, 행정팀 등 전회사차원의 대규모 출장 팀이 꾸려진 만큼 부담감도 컸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 이후에는 모스크바의 MCC(Mission Control Center)로 이동해 소유즈와 국제우주정거장의 도킹까지 취재를 했다. MCC의 경우 취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큰 물리적 어려움 없이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바이코누르와는 달리 러시아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공항 출입이었다. 세관신고를 해야 하는 장비를 갖고 공항을 몇 번 출입하는 동안 소비된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까르네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공항으로서는 당연하겠지만 세관 직원에 따라 일관성 없이 일을 진행하는 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직원은 마치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고 괜한 배짱을 부리는 듯한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이런 불편함을 미리 전해 듣고 출장을 떠났기에 현장에서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대국이라고 하는 러시아의 이런 후진국과 같은 모습에는 실망을 했다.
어려움도 많고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출장이었다. 역시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는 나의 일, 이 길을 선택하고 그 길 위를 걸어 갈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