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카메라, 무엇을 찍고 있는가
양재규(변호사, 언론중재위원회 홍보팀장)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일부 건물주들이 난데없는 임대업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탄핵 인용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옴에 따라 방송사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인데, 자택 주변 건물 옥상 자릿세가 제법 나가는 듯하다.
취재를 위해 건물 옥상에 오르는 기자들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서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세상이 다르다’고 했다. 기자들이 옥상에 오르는 것은 높은 곳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면서 촬영하는 기법인 ‘부감샷(high angle shot)’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옥상에 와이어 카메라를 설치해서 찍으면 현장영상을 입체감 있게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장소였다면 불가능했을 특종이 옥상이라서 가능해진 예도 있다. 이른바 ‘황제조사’ 논란을 일으킨 보도사진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작년 1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는 ‘팔짱낀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함께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모습은 피의자 신분이었음에도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희미하게나마 얼굴에서 웃음기마저 느껴진다. 물론, 맞은편에 앉은 검사도 환하게 웃고 있다. 웃는 두 사람 사이를 시커먼 검찰청사 외벽 면이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창문으로 비친 밝은 조사실 속 아이러니한 풍경은 더욱 도드라졌다. 지금 다시 봐도 참으로 절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이 장면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까? 사진을 찍은 장소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쯤 떨어진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건물 옥상이었다고 한다. 기자는 밤 시간 적막했을 건물 옥상에 올라 5시간 가량 머무르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한 노력이 특종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사진으로 기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주는 제48회 한국기자상 전문보도부분 상을 받았다.
우 전 수석 관련 보도사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자에게 건물 옥상은 사진 찍기에 적합하며 경우에 따라 특별한 행운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많은 기자들이 오늘도 무거운 장비를 메고 때로는 돈을 내거나 때로는 통사정을 해가며 건물 옥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건전한 상식과 직업윤리를 가진 기자라면 촬영에 앞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한 가지 사항이 있다. 당신이 건물 옥상에서 그토록 간절히 찍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화사하게 핀 거리의 봄 풍경이라면 괜찮다. 광장으로 모여든 군중의 열띤 집회 및 시위 장면이라면 역시 무방하다. 그러나 옥상이 아니었다면 시선이 미치지 못했을, 담장 너머 누군가의 집안 풍경이라면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취재윤리상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무척 소중한 것이지만, 유일무이한 가치는 아니며 다른 기본권과의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언론의 자유에 관한 근거 규정이라 할 수 있는 헌법 제21조에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그 한계가 명시되어 있다. 대다수 권리나 법익들이 그렇듯이 언론의 자유 또한 다른 권리들과의 조화를 전제로 법적 보장을 받는 것이다.
현재 언론의 자유와 자주 충돌하는 법익 중 하나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들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고, 누리는 것이 마땅한 권리다. 만일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문자 그대로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사생활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공공의 이해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하면 비록 그것이 사생활일지라도 공개되는 것이 옳다.
지난 2000년대 초반, 한 거물급 정치인이 동료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치인이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측근들과 회의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 보도되었다. 문제의 회의 장면은 맞은편 아파트에서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이에 대해 해당 정치인은 자신의 사적 공간인 아파트 거실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치자금 지원에 대한 의혹을 받는 상태에서 그 측근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처럼 공인의 사생활 중에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해당하여 사생활 침해가 문제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공인보도와 관련하여 사생활 침해가 문제될 경우 실무상 참고가 될 만한 기준으로 독일의 ‘인격영역론’이 있다. 이 이론은 사람의 인격의 영역을 내밀영역, 비밀영역, 사사적 영역, 사회적 영역, 공개적 영역 등으로 세밀한 구분을 시도한다. 포괄적이며 추상적인 인간의 인격영역을 그 특징별로 분류하여 각각의 영역별로 보호의 범위 내지 공개 가능성에 차등을 두겠다는 생각은 개별 영역의 한계가 불분명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적 언론보도의 위법성 판단에 매우 유용한 접근 방식이다. 그래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인격영역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우리 판결 중에서도 인격영역론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인격영역론에 따르면 자택 담장 너머의 일은 사사적(私事的) 영역에 속한다. 집 주인의 가족, 친구, 친척 등 제한된 범위 내의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든 정치인의 예처럼 매우 특수한 상황 하에서 예외적으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사적 영역 안에서조차 홀로 있을 권리, 타인의 엿봄을 배제할 권리를 아예 박탈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2015년 6월, 한 언론사에서 병실에 누워 투병 중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모습을 촬영,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시정권고를 내렸다. 작년 연말에는 자택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돌아가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역시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시정권고가 내려졌다. 독일에서도 2006년 지중해 유명 휴양지에 위치한 공인의 저택을 항공촬영하려는 시도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연방헌법재판소는 그것이 비록 공인의 저택이라 할지라도 주거는 제3자의 관찰로부터 배제되는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로 촬영을 불허했다.
가끔은 언론에서 말하는 ‘알권리’라든가 ‘언론자유’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혹시 지금 어느 건물 옥상에서 촬영하고자 하는 것이 단지 누군가의 집 담당 너머의 풍경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무엇을 촬영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그 건물 옥상의 카메라들은 알권리에 기여하는 도구가 되든지, 아니면 고작 대중의 말초적 호기심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옥상에 선 기자라면 지금 찍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공적 토론에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