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위기설’을 선동하는 일본의 의도
최근 일본의 신문기사와 방송을 보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한반도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북한 미사일과 핵 실험 가능성이라는 안보위기 와중에서 일본 언론이 예년과 비교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북풍’을 선동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이렇게 일본이 ‘한반도 위기설’을 부추기는 배경과 의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반도 위기설’을 선동하는 일본의 의도는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일본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보통국가’, 다시 말하면 ‘전쟁 가능한 국가’ 노선 추구와 관련이 있다. 일본이 ‘보통국가’를 만드는데 주변국의 위기는 놓칠 수없는 호재로 작용한다. 교전권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헌법 제9조의 개정은 195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일본 보수파의 오랜 여망이었다. 그러나 헌법 개정은 과거 태평양전쟁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남아있는 일본인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아 번번이 좌절되었다. 현재 보수집권당이 국회에서 아무리 다수의석을 확보하였다고 해도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는 것이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있다. 국민여론이 헌법 개정에 찬성해야 되는데 이를 설득하기 위해 중요한 이슈는 주변국의 위협이다.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기 위해 국내 정치 차원에서 필요한 것은 일본인의 뇌리에서 일본제국과 일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그 대신에 더 나쁜 외부의 적을 부각시켜 자신의 과거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일본 정부가 ‘보통국가’ 추진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30년대 후반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 학살, 강간 등으로 악명 높은 ‘난징대학살’을 부정해 왔다. 한국인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거나 강제성을 부인하고,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역사 교과서 개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선택적 기억’을 강요하고, 동시에 우익 정치가들의 각종 망언을 통해 군국주의 역사를 미화해 왔다. 태평양 전쟁 이후 역대 일본 총리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호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아베의 입장에서 위협적인 북한이 그만큼 ‘보통국가’를 위한 헌법 개정 여론조성에 유리하기 때문에 ‘북풍’을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최근 일본이 과도하게 부추기는 ‘한반도 위기설’은 군국주의 노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던 1931년 만주사변 이후부터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사이에서 군부와 정부가 언론을 선동하며 전쟁 국가로 내몰던 시기에 자주 사용한 용어인 ‘비상시’의 21세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둘째는 아베 내각의 ‘국면전환용’이다. 그 배경은 일본이 ‘한반도 위기설’을 본격적으로 부추기기 직전에 불거진 정치스캔들을 찾아보면 짐작이 간다. 바로 직전 일본 정부의 국유지를 극우 성향 학교법인에 헐값으로 매각한 스캔들에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가 연루되어 일본 정계를 강타했다. 이에 더하여 각료들의 말실수와 사생활 논란으로 아베 내각의 기반을 흔들어 놓고 아베 자신의 재선고지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바로 이 때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한반도 위기 국면이 전개되자 한국 내 일본인 대피계획 등 안보 위기론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여론조사로 드러났다. 4월 23일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이 58.7%로 지난달보다 6.3%로 상승하여 2월 지지율을 회복했다. 북한 위기를 부각시켜 ’북풍‘을 이용한 아베 정권의 미디어 전략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아베는 국민시선을 국내 정치 스캔들에서 한반도로 돌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셋째는 한‧미‧일의 군사적 공조 강화를 통해 중국 견제에 필요한 대국민 여론조성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최근 한반도 해역에 들어 온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와 일본 해군과의 합동훈련 실시, 한국 내 일본인 대피계획 보도와 동시에 6월 주한미국인 대피훈련 계획설을 언론에 흘리면서 양국이 물밑에서 동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미‧일 3국이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함에 있어 한‧일 양국 사이의 역사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왔다. 역사문제 해결책으로 나온 결과가 바로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다. 이 합의는 미국의 강한 압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3국이 긴밀하게 추진해야 할 군사적 과제는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이다. 한국에 배치될 사드는 그 첫 단추인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국과 협력하여 ‘한반도 위기설’을 선동하여 여론조성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넷째는 앞의 셋째 의도와 관련이 있는데 한국의 차기 대선에서 보수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아베 정권의 희망사항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대북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베 내각으로서는 한국의 차기 대선에서 보수파가 당선되는 것이 미사일방어시스템을 통한 중국 견제와 ‘보통국가’ 행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만약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날이면 이들의 행보에 스텝이 꼬이게 된다. 그래서 한국 언론이 ‘한반도 위기설’을 부추기는 일본 언론을 비판하는데 반해, 오히려 바다건너 일본의 언론이 더 적극적으로 선동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과 같이 ‘한반도 위기설’을 선동하는 일본의 의도를 생각할 때, 독자들은 라틴어로 ‘퀴 보노‘(Cui bono)라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이 용어는 경찰조사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떠한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 그 배경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데, 지금은 국제정치학자나 지정학자들이 세계적인 사건이 터지면 ‘궁극적으로 누가 또는 어떤 나라가 이익을 얻는가?’를 분석할 때 종종 언급하는 용어다. 국제정치에서 특정이슈에 관해 특정국가의 주류 언론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도할 때는 반드시 그 배경과 의도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장 회 식
뉴욕주립대학교 박사
역사학자‧국제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