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취미’에 관하여
취미를 선택받는 모든 사람에게
▲ 만화를 좋아해 땡땡(tin-tin)의 대모험 전시회에 참석한 필자
취미란 무엇인가? 취미의 ‘취(趣)’는 ‘서두르다’, ‘빨리 달려간다’는 뜻이고, ‘미(味)’에는 ‘맛’ 뿐만 아니라 ‘취향’, ‘기분’이라는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부지런히 좇아간다는 뜻이다. 이처럼 취미는 이성의 영역이기보다는 감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개인의 은밀한 취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흔히 꼽는 3대 취미가 있다. ‘카카오’라 불리는 자동차(카) 튜닝·카메라 수집·오디오 튜닝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장비만 갖춰서는 무언가 아쉽고, 세트를 갖춰도 이보다 더 좋은 스펙, 다른 기능을 가진 장비에 눈길이 간다. 이런 취미는 한번 주머니가 열리면 다시 잠그기 쉽지 않아 과소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투자되는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눈초리를 받는 취미도 있다. 낚시, 게임, 골프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지구가 멸망해도 이들은 오늘 마지막 찌를 던지고, 막판 접속을 하고, 최후의 라운드를 즐기리라.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는 이 은둔자들과 자주 어울리고 싶다면 취미를 공유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 비용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취향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취미도 있다. 와인 모임, 등산회, 댄스, 서핑 등이 그 예다. 순수하게 취미를 즐기는 사람만큼, 선입견을 갖는 사람도 많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마음 있다’는 편견과 싸워 진정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종종 마주치는 과제다.
이 밖에도 고스톱이나 포커, 경마 같은 사행성 취미, 이종격투기나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은 취미도 뭇사람에게 환영받기 쉽지 않다. 불건전하다고 핀잔을 듣거나 주변 사람을 염려하도록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개인의 SNS 활동도 검열당하고 제지당한다. 본인이 온라인에 올린 콘텐츠가 의도치 않게 고용주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취미라는 이름의 개인 영토는 타인에 의해 쉽게 침략당한다.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비용, 시간, 선입견, 윤리, 안전 등의 요소만 고려해도 바람직한 취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위의 기준을 충족하는 취미 중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산책·요리·독서·간단한 보드게임·영화감상·가벼운 운동 정도다. 누구에게 취미로 소개해도 무난한 것들이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만약 운이 좋지 않아 위의 취미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이면 더더욱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취미를 묻는 공적인 순간에 ‘화투’나 ‘피규어 수집’을 언급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런 절제된 영토 위에 살려니 처음 좇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자꾸 잊어버린다. ‘취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공염불로 들린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양보하는 것이 이 땅에서 ‘가장 좋은 취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안민식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