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자와 촬영감독, 뭐가 달라?”
▲지난1월25일영상보도가이드라인광주전남지부온라인교육 <사진왼쪽부터> 나준영부장(MBC뉴스콘텐
츠편집부), 양재규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윤성구기자(KBS 전략기획부), 이승선교수(충남대언론정보학과)
대학 4학년, 당시 정부의 급진적인 학과 통폐합 정책에 지방대학 학생들의 꿈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를 보며 분노해 직접 만든 인권 다큐 <지켜주지 못한 날개>. 2014년 KBS 다큐콘테스트에서최우수상을받았다. 자연대 화학과 학생으로 같은 계열 대학원을 준비하던 스물여섯 청년. 내 인생 항로가 바뀐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KBS <추적 60분> 조연출 및 VJ, 신문사 기자를 거쳐 2018년 겨울. KBS 영상기자에 합격했다.
비교적 취업이 수월한 전공을 뒤로하고, 시사물을 다루는 언론인이 된 이유. 처음엔 막연했다. 즐거움을 주기보다 아픔에 공감을 내가 더 잘한다는 것. 이거 하나였다. 그런 내가 영상기자가 되고 난 후에도 명확히 답하지 못했던 질문. 바로‘영상기자와 촬영감독의 차이’였다. KBS 로고가 달린 카메라와 함께 현장을 누빈 지 2년. 나름의 답을 내렸다. “요리사와 의사의 칼. 이 차이가 아닐까요?” 함께 근무하는 10년 차 촬영감독 선배는 내 질문에 미소를 띠며 자세히 이유를 물었다. “만들고자 하는 요리를 정해놓고 주어진 재료를 맛깔나게 빚어내는 요리사. 어떤 재료를 주어도 그에 맞는 요리법을 적용해 목표한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죠. 반면에 수술실의 의사는 칼로 환부를 열어봐야 그때부터 뭘 해야 하는지 알 아요. 진단 장비로 예측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치료를 위해 든 메스가타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해요.” 현장은 살아있다. 사전 취재 계획과 다를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의사와 같이 현장에서의 빠른 판단이 생명이다. 그렇기에 영상기자는 마주치는 현장의 윤리적, 사법적 문제들도 매 순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생명과도 같다. 나뿐만 아니라 취재원과 대중을 위해서. 영상보도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영상기자협회는 올해 2020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개정판을 집필했다. 매년 신입 영상기자들에게 교육을 실시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온라인화상교육’으로 전환했다. 직접 대면할 수 없었지만 이런 형식의 온라인 교육의 장점이 분명하고, 또 코로나 위기 이후에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첫째로, 지역과 연차를 불문하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월 온라인을 통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교육’에 광주지부에서는 입사 1년차부터 근속 25년 근무한 영상기자들이 참석했다. 오프라인 교육이었다면 한 도시의 방송국을 모두 일시 휴업시켜야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로 현장기자, 법률가, 학자로 이루어진 강사들은 모두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집필진이다. 이들의 강의는 ‘살아있는 문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매일 촉박한 시간 속에 보도물을 제작하니, 유튜브 게시물을 꼭 사용해야 할 때 저작권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난감하기도 하다. 출처 표기만 하면 문제없다는 데스크의 방침에 명확한 근거가 없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당일 교육에서 한 기자가 질문했다. 양재규 변호사는“저작권법에 저작권자의 동의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인 목적이 시사보도 목적이다. 이를 위해 공표된 저작물을 일부 사용할 수 있다. 저작권자의 별도 동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유튜브’가 아닌 해당 채널을 명확히 출처 표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부터 온라인 대면 교육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KBS 윤성구 기자가 “그럼 SNS에 공표된 유명인의 사진도 허가 없이 쓸 수 있나”라고 돌발 질문을 했다. 이에 양변호사는 “공표라는 것의 정의때문에 일반화는 어렵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만 공개된 게시물은 사적 영역으로 판단하고, 이를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된다”라고 답변했다. 돌발상황은 멈추지 않았다. MBC 나준영 부장이 “A와 B의 저작물을 C가 합쳐서 만든 경우. 언론사는 C의 영상에 대한 허가를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가”라고 기습공격을 했다. 이번엔 충남대 이승선 교수가 나섰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C의 창의적으로 C가 만들어 ‘2차 저작권’으로 인정받았을 경우 책임이 많이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300km 떨어진 서울과 광주에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생동감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권역의 영상기자들이 공간의 제약 없이 이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교육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 경험이 많이 부족한 나는 그날 총 7개의 질문을 했다. 덕분에 예정된 강의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불편한 강의실이 아닌 각자 편안한 가정에서 참여했기에 용인됐던 것 같다. “나는 인종, 종교, 직업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의대생들이 의사가 되는 관문 앞에서 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구절이다. 살아있는 현장 앞에 영상기자들 또한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의무를 우선해야한다. 첨예한 갈등 속 냉철한 판단의 근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집필진과 한국영상기자협회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현장기자들이 사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지혜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또 멀어져야 살아남는 위기 속에서 화상교육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더 가깝고 끈끈하게 호흡했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더라도 온라인 화상교육은 지속되었으면 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고군분투하
는 영상기자 동료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 환부를 잘 찾아내 도려내고 치유하는 명의의 칼처럼, 우리 사회 아픈 곳을 잘 어루만지고 보듬는 데 나의 카메라를 사용할 일만 남았다.
정현덕/ KBS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