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시 장수생이 언시 장수생들에게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국입니다. 이 시국에 안 힘들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오래된 불안이 불행으로 번지고 있을 ‘언시 장수생’들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얼굴도 모를 장수생들을 걱정하는 건 지나친 오지랖이란 생각도 들지만, 저 역시 약 5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그 사이 뚜렷한 직업도 갖지 못한 '쌩' 장수생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장수생의 길을 걷고 계신 분들에 대한 걱정이 드는가 봅니다. 제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한들 장수생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지금 느끼는 불안감을 줄여줄 수도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혹여나 제 이야기가 장수생분들의 ‘버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몇 마디 남겨봅니다.
무엇 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시를 준비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라곤 이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언시를 준비하면서 제 삶은 아주 단순해져 갔습니다. 예전엔 영화도 찍고 축구도 하고 연애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하고, 이것저것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여지가 많았을 것이고 항상은 아닐 지라도 아주 가끔은 행복이나 작은 즐거움 정도는 느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언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제 활동 범위를 점점 더 줄였습니다. 영화를 찍기는커녕 보지도 않았고 축구나 자전거는 커녕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연애나 여행은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시공부를 하는 것 외에 모든 것들이 합격을 방해하는 요소들로 느껴졌고 그 방해 요소들을 하나둘씩, 종국엔 전부 다 제 삶속에서 지워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빨리 합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삶이 단순해지니 당연히 행복의 여지가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 가지를 하면 열 가지 종류의 행복을 맛볼 가능성이 있겠지만, 한 가지에만 집착하면 그 하나에서 창출되는 행복말고는 다른 종류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저에게 주어질 행복이란게 존재할리 없는 겁니다.
돌이켜 보면 입사를 준비하는 기간은 언제나 고통이었고 단 한 줌의 행복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추억으로 남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적어도 저는 아니었습니다.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고통이 미화되진 않습니다. 결과가 좋은 건 좋 은 거고 고통은 그대로 고통일 뿐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견디고 인내해야겠지만,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불행을 줄여가며 준비를 하는 게 장기전을 대비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에 최대한 적게 포기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행복할 여지가 줄어들고 불행에 빠질 확률만 높아집니다. 모든 걸 다 안고 갈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를 위한 3가지 활동은 남겨둬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신다면, 포기하기 싫었는데 포기했던 어떤 활동을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외에도 힘든 상황일수록 스터디를 꼭 해야 한다거나, 플랜 B와 C를 구체적으로 짜 두면 플랜 A를 좀 더 길게 끌고 갈 동력이 생긴다거나 따위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허락된 지면 관계상 글은 이쯤에서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힘든 시국을 딛고 현장에서 만날 여러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황종원/ KBS